2어린 시절
1
1914년 섣달이었다. 추이와 함께 한 해가 깊어져 끝자락이 되는가 싶더니 그믐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느새 설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람 끝은 살을 에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모질고 잔인한 겨울의 뒤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삭풍에 떠밀려 자닝스럽게 날아갔다. 마을, 들녘, 산비탈 여기저기에 흩뿌려졌다.
눈송이는 날아가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날선 칼날 같은 된바람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강한 힘을 자랑하며 뽐내었다.
“연아, 연아, 하늘로 높이 올라라.”
한 아이가 옷 틈새로 파고드는 칼날 같은 매운바람을 피해 언덕 밑으로 가며 소리쳤다. 차가움도 잊었다. 긴 꼬리를 흔들면서 하늘로 치솟는 연을 바라보며 신명나게 외쳤다.
“내 연이 더 높이 솟았다.”
“아니야, 내 연이 더 높다.”
애들은 마을 뒤 바람받이가 되는 둔덕의 양지바른 곳에 서서 싸우는 것처럼 우겨댔다.
“나도 연날리기를 해야지.”
운현은 동무들의 소리를 듣고 방패연을 들고 뛰어나갔다. 애들이 놀고 있는 마을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연날리기에 참으로 좋았다.
“운현아, 어서 와라. 연 날리려고.”
숙형은 운현을 보자 손짓하며 반겼다.
“나만 빼놓고 너희들만 놀려고.”
운현은 연을 들고 날릴 준비를 했다.
“사립문 앞에서 불렀는데 대답이 없더라.”
“방에서 천자문을 외웠었는데…?”
운현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였기에 듣지 못했었다. 소리 내어 읽었기에 들리지 않았다.
“방패연 누가 만들어 주었지?”
덕기는 방패연을 보자 욕심이 났다. 자신의 연은 꼬리가 길게 달린 가오리연이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었어.”
운현은 실을 풀어 연을 날리며 당당하게 자랑했다.
“우리아버지도 방패연을 만들 줄 안다.”
숙형은 은근히 화가나 시샘했다.
“봐라, 잘 날아 오르지!”
운현은 자새에 있는 실을 풀어 연을 높이 날려 보냈다. 얼레가 풀리면서 바람을 타고 힘차게 하늘로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했다.
빙글빙글 몇 바퀴 돌더니 다시 치솟았다. 바람받이가 되는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실패에서 실을 풀어주며 애들이 있는 곳으로 바투 했다. 누구 것이 더 높이 오르는지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누구 연이 더 높이 오르나보자.”
덕기는 지고 싶지 않았다. 자새에 남아 있는 연실을 마저 풀고 잡아 당겼다. 비상하더니 한 쪽으로 기울며 하강했다. 살며시 늦추며 따라가다가 뒤로 물러섰다. 추락하던 연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내 연이 더 높이 오를 걸.”
운현은 얼레를 잡았다. 연이 바람을 받아 한 바퀴 돌더니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내 연을 따라오려면 어림없지.”
덕기는 실을 잡아당겼다.
“내 연이 더 높이 오른다.”
숙형은 지기 싫어 끼어들었다.
“이봐라. 내 방패연이 제일 높이 올라갔다.”
운현은 기세를 잡으려고 소리쳤다. 연줄을 잡았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높이 치솟았다.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다시 올라갔다.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너의 아버지는 연을 잘 만든다.”
덕기는 연이 추락하듯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땅에 닿으려다말고 비스듬히 올라갔다.
“우리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다 잘하신다.”
운현은 아버지 추어올려 자랑했다. 자신의 키가 한 뼘이나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우리아버지도 연을 잘 만드는데.”
덕기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날씨가 차가우니 오늘은 그만 집으로 가자.”
숙형은 실패를 돌려 감았다. 연이 맨 밑에서 맴돌고 있으니 신경질이 났다.
“벌써 해가 져가네.”
덕기는 태양을 바라보며 연실을 감았다. 친구들에게 지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나는 집에 가서 쇠죽을 쑤어야 하니까. 바람이 부니 연날리기가 좋은데….”
운현은 아쉬웠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것이 속상했다.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서 여물로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여야 되었다.
“내일 보자. 나도 아버지에게 좋은 방패연을 만들어달라고 할 테니까.”
숙형은 연을 들고 언덕을 내려갔다.
“좋아. 내일 연싸움을 하자.”
운현은 연 중앙에 뚫어져 있는 꽁수를 들여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연이 제일 높이 오르니 기세가 등등해졌다. 아쉬웠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소는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식구들이 굶어도 소에게는 여물을 주어야 되었다.
“연싸움을 하자고.”
덕기는 대거리하며 연을 들고 총총 걸어갔다.
“같이 가자.”
운현은 연을 들고 살걸음으로 따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