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8
상태바
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8
  • 임순종 기자
  • 승인 2025.06.16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병든 아내

3

운현의 결혼은 가을걷이가 끝나자 단숨에 이루어졌다. 중매쟁이가 오는 가 싶더니 벼락치기로 성사되었다. 어떻게 혼사를 치렀는지 몰랐다. 양가가 궁핍했기에 예물이나 인사치례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다. 신부 집 초례청에서 큰절하고 혼례를 끝냈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운현에게 시집온 새색시의 이름은 황 금순이라고 했다. 택호는 나주 댁이라고 불렀다. 몸은 깡마르고 잔약했다.

창백한 얼굴이 병자 같았다. 운현은 맞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부모님이 결정하였기에 따랐다. 장가들었을 때에는 몰랐었다. 결혼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환자라는 것을 알았다. 병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속아서 혼사를 치렀다.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환자이니 이혼하자고 할 수도 없었다. 파혼하여 친정으로 돌려보낼 만큼 모질지도 못했다.

운명이나 팔자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거문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아가야 할 아내이기 때문에 정성껏 간호해야 되었다.

오늘도 낮이 지나고 무서운 밤이 시작 되었다. 금순에게는 잠 안 오는 밤이 무서워 싫었다. 뜬것이 찾아와 괴롭히는 것 같았다.

“콜록, 콜록, 콜록….”

금순은 밤이 이슥해졌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감기는 아닌 것 같고 기침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운현은 한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호롱불을 켜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심한 기침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첫날밤부터 콜록거리기는 하였으나 감기인 줄 알고 귀넘어들었다. 곧 낫겠지 하고 방관했다.

“콜록, 콜록콜록, 콜록,….”

금순은 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몸부림쳤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감기가 아니면 혹시…?”

운현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니 폐병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온몸이 오싹해졌다.

“폐병이랍니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며 부모님이 속여 서둘러 혼사를 치렀어요. 처녀귀신을 만들면 안 된다고. 콜록 콜록 미안합니다.”

금순은 눈물을 흘리며 사실대로 고백했다.

“무슨 소리야. 정말로 결핵이라고?”

운현은 깜짝 놀라며 몸을 잦혔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내를 응시했다. 짐작은 했는데 사실을 알고 나니 아내가 밉고 무서워졌다. 결핵에 걸리면 피를 토하며 죽게 되었다. 가족에게 옮기는 무서운 전염병이라고 했다.

“나는 병들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머님이 억지로….”

금순은 서럽게 흐느꼈다.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 인식하니 무서워 몸이 바르르 떨렸다.

“숨길 걸 숨겨야지!”

운현은 신경질을 부리며 짜증을 냈다.

“미안해요. 나도 죽기 전에 시집이라도 가고 싶어서….”

금순은 눈물을 닦았다.

“내가 무슨 팔자를 지녔기에….”

운현은 기가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일 친정으로 갈까요?”

금순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쳐들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애원하고 있었다.

“친정에 누가 있는데?”

운현은 아내가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장인도 병들어 기침하며 시름시름 아팠다. 장모가 품팔이하여 비렁뱅이처럼 궁색하게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죽더라도 친정에서 콜록 콜록….”

“결혼했으니 죽게 되면 홍 씨 집안 뜬것이 되어야지!”

운현은 자신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시켰다. 아내가 미우면서도 불쌍했다. 하늘에서 맺어준 짝이라면 받아들여야 되었다. 부부관계이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병을 치료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되었다.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정성들여 돌봐주면 병이 낫을 수도 있었다. 결핵을 앓다가 나사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명 보았다.

“미안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는 환자를. 콜록 콜록….”

금순은 늘킴으로 서러워했다.

“희망을 가져요. 결핵에 걸렸어도 낫아 제 명대로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된다고 하던데…?”

“가족에게 옮기지 않도록 환자가 조심해야….”

운현은 병들었다고 따돌리는 것 같아 얼버무렸다.

“무어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당신이 억지로 병들려고 해서 폐병에 걸렸겠어요?”

운현은 아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병든 사람의 죄가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병들어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불행이었다. 거절한다고 해서 버려지지 않았다.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금순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병이 낫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자연히 치료가 되니까….”

운현은 아내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절망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했다.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었다. 삶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이 없으면 숨 쉬는 주검이었다. 시체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4

어느새 봄은 지나갔다. 강남 갔던 제비는 돌아와 처마 밑에 둥지를 지었다. 언제 알을 났는지 제비집에 새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보릿고개의 절정인 초여름이 되었다. 뒤란에 있는 감나무에서는 감꽃이 피더니 떨어졌다.

아카시아 꽃이 피더니 어느새 밤꽃 냄새가 물씬 풍겨댔다. 마당에는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제 철이 온 것을 반겼다. 축제를 하듯이 춤추며 즐겼다.

세월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농사철이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모내기가 끝나니 논매기가 시작 되었다. 아우거리 하여 곰삭혀 두었다가 손으로 흙을 주물러 땅고르기를 하면서 잡초를 제거했다.

운현은 품앗이로 논매기를 하고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귀잠에 빠졌다. 알 수 없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벌떡 일어났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기침을 하다가 잠든 아내를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팔자가…?’

운현은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쳐다보며 마당을 맴돌았다. 밤이면 가끔 나와 자신과 아내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려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떴다. 별들이 끔벅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내는 분명히 낫을 거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지.”

운현은 축축하게 젖어있는 눈가를 닦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자고 있는 아내의 곁에 누웠다. 내일 일을 생각해서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에 저절로 벗겨지면서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기와집을 짓고는 귀찮아 부서 버렸다.

‘결혼을 했으니 아내는 하늘이 짝지어준 평생의 동반자인데. 어떻게 하면 살려낼 수 있을까?’

운현은 지쳐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몸을 뒤척였다. 어떻게 하면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궁리했다. 결핵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폐병에는 뱀과 개구리가 좋다고 하던데….’

운현은 몸을 뒤척이며 사람들의 말을 떠올렸다.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약으로 무엇이 좋은지를 알아보았었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된다고 했었다.

‘벌써 동창이 밝았네!’

운현은 봉창에 시커먼 어둠이 가시고 희붐한 여명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아내가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하늘을 감동시켜 살려내야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내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날이 밝았으니 들로 나가서….’

운현은 방에서 나왔다.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처마 밑에 걸려있는 삼 껍질로 꼰 노끈 하나를 호주머니에 담았다. 뒤란에서 막대기 하나를 찾아 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개천으로 갔다. 푸새들이 우거져있는 풀숲을 헤치며 돌아다녔다.

숨어 있던 개구리가 펄쩍 뛰어 올랐다. 자갈 위에 앉아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로 힘껏 내리쳤다. 쭉 뻗은 개구리가 다리를 바르르 떨며 죽었다. 꿰미에 끼었다. 하천 가를 돌아다니며 여러 마리 잡았다.

‘뱀이다.’

운현은 도랑에서 나온 뱀을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저 뱀을 잡아야 한다.’

운현은 돌을 집어 들었다.

‘뱀을 죽이면 안 되지. 올가미를 가져왔는데. 살게 잡아서….’

운현은 들었던 돌을 던져버렸다. 쫒아가 작대기로 뱀의 머리를 눌렀다. 호주머니에서 노끈을 꺼냈다. 뱀을 잡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았던 올무였다. 올가미를 뱀의 머리로 넣어 목에 걸었다. 잡아당겨 조였다. 노끈을 작대기 끝에 매었다.

‘뱀을 푹 고아서 아내가 먹으면….’

운현은 뱀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개구리를 잡아 왔으니 삶아서….”

운현은 사립문을 들어서며 텃밭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뱀도 잡았네.”

행동 댁은 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뱀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개구리는 어머니가 솥에 삶아서…”

운현은 어눌하게 말했다. 꿰미에 끼어있는 개구리를 마당에 놓았다.

“알았다. 개구리는 내가 솥에 고아서 새아기에게 줄 테니까….”

행동댁은 호미를 놓고 텃밭에서 나왔다.

‘화덕을 만들어 단지를 놓고 불을 집혀 푹 고아야 하는데….’

운현은 집 뒤란으로 갔다. 뱀을 매달아놓고 땅을 팠다. 화덕을 만들어 단지를 얹었다. 뱀을 작은 무명베 자루에 담아 단지에 넣었다. 물을 부었다. 뚜껑을 닫아 위에 큼직한 돌을 얹었다.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폈다. 장작불로 뭉근하게 달였다.

‘뱀탕을 먹으며 아내의 폐병이 깨끗하게 낫을 것이다.’

운현은 마음속으로 빌었다.

‘인간의 생명은 질긴 거야.’

운현은 희나리가 토닥거리며 타고 있는 불꽃을 응시했다. 품앗이를 가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