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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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4
  • 장강뉴스
  • 승인 2025.05.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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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가장이 되어

2

땡볕으로 펄펄 끓고 있는 고샅은 용광로의 열기처럼 뜨거웠다. 화덕의 숯불 같은 햇빛이 불덩이가 온몸에 달라붙어 괴롭혔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게 만들었다. 땅에서 뱉어내는 훈김 때문에 숨쉬기가 거북했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운현은 얼굴의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사립문을 들어섰다. 텃밭에서 푸성귀를 뽑고 있는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운현아, 내일부터 학교에 가지 마라.”

행동댁은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잔인하게 모진 말을 거리낌 없이 뱉어댔다.

“소학교에 다니지 말라고요?”

운현은 장승처럼 서버렸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님이 왜 그런다는 걸 알고 있지만 포기하기는 싫었다.

“아버지가 몸을 부리고 누워계신다.”

행동댁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가정형편이 고달프고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 화풀이를 자식에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계신다고요?”

“그래, 아까부터….”

“많이 아프신가요?”

운현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너를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네 아버지가 병으로 시난고난하니…. 먹을거리가 없어 끼니 챙기기도 어렵고. 네 할머니와 어린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댁은 자식에게 냉정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어 음성을 낮추었다. 운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운현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대거리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당장 저녁 먹을거리가 없으니 채소라도 삶아서….”

행동댁은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참으며 울먹거렸다. 현실이 그랬다. 쑥 같은 나물이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으로 궁색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금년이 졸업반이라 졸업은 해야….”

운현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마무리를 한 치 앞에 놔두고 포기하기는 싫었다.

“어미가 자식이 미워서 그러겠니?”

“몇 개월만 참으면….”

운현은 엉엉 울고 싶었다. 감정을 자제하며 간신히 참았다.

“다음에 봐서 다니면 안 될까?”

행동댁은 사정했다. 행동양반이 병들어 누워있으니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두렵고 무서웠다.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운현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 고집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자리보존하면 자신이 대신하여 가장이 되어야 했다. 그 사연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맺고 싶었다. 졸업은 꼭 하고 싶었다. 졸업장은 어디에 써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논 네 마지기로 지은 농사가지고 어떻게 살겠니? 공출로 빼앗기고 나면 일곱 식구 식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행동댁 아들에게 하소연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논 네 마지기라도 남편의 소유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것도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거의 모두를 빼앗아갔다.

“알겠습니다.”

운현은 체념했다. 방으로 들어갔다. 병들어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어디가 편찮으세요?”

운현은 아버지 머리맡에 앉았다.

“모르겠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며 가슴이 답답해서….”

명진은 신음하며 끙끙 앓았다.

“한약이라도 한 재 지어다 드셔야…?”

운현은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어린 자신이 미워졌다. 아버지가 몸을 부리고 누워계시는데 자식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였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명진은 고개를 저어댔다. 약을 지을 돈이 없었다. 그 돈이 있었다면 식구들이 먹을 식량을 팔아왔을 것이다. 병까지 들어 누워있는 무기력한 자신이 한 없이 가엽고 불쌍했다. 어쩌면 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건해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었다. 오늘은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잔약한 존재로 변해버렸다.

3

‘일을 많이 해서 몸살이 나셨을까?’

운현은 누워계신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족을 위해 밤낮을 모르고 허덕거려 댔다. 자신의 몸은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

운현의 볼에는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두 손으로 주물러 주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버지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운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려고?”

명진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대신 내가 일을 해야….”

운현은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문질렀다.

“어디 가서….”

“과수원집에 가면….”

운현은 고개를 숙였다.

“일본사람 집에서 머슴살이하려고?”

“남의집살이 한 것이 아니라 품이라도 팔아서….”

“어린애에게 품팔이를 시킬 사람이 있겠니?”

“사정이라도 해서….”

운현은 울먹거렸다. 집안 형편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알아서 해라. 아버지가 병들었으니….”

명진은 고개를 돌리며 울먹였다. 몸 상태가 하루 이틀에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품팔이를 하지 말라고 붙잡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지만 제가 장손이니….”

“일제치하에서 살아가기도 참으로 어려운데….”

명진은 울컥 치솟아 오르는 서러움을 삼켰다.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가련했다. 소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 자식을 삶의 일터로 내몰아야 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산 입에 거미줄은 칠 수 없고 내가 머슴살이라도 해서 우리 식구가 살아갈 수 있다면….”

운현은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학교가 끝나고 틈이 나면 과수원에 가서 심부름해주는 일을 가끔 하였다. 공휴일에는 배 밭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아버지가 자리보존 하였어도 식구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야 되었다. 죽게 되면 공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지식은 인간이 생존해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만사가 모두 그랬다.

“아버지가 병들었으니 장손인 네 책임이 무겁겠구나. 못난 애비 탓에….”

명진은 자반뒤집기를 하며 늘킴으로 서러워했다.

“걱정 마십시오. 어떻게 잘 되겠지요.”

운현은 방문을 나섰다. 인간은 살아있어야 괴로움, 슬픔, 고통, 행복, 불행 같은 것이 존재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죽을 각오로 산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생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했다. 사람들은 일본의 압박과 서러움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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