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행복은 복된 운수 (幸福之福運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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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행복은 복된 운수 (幸福之福運數)
  • 장강뉴스
  • 승인 2024.08.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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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최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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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다.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인간이 참된 행복이 있다. 대부분이 곧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삶의 참된 행복은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신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요, 미래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다.

삶은 불행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지지만 행복한 사람에게는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 단순한 원리에 있다. 자신에게 흥미를 일으키는 것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할 때이며 행복은 현재에 있다.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을 때 노력이 촉발된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아쉬움과 부족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결핍을 통하여 원동력이 가동되어야 한다.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비교하고 현재의 자신을 과거와 미래와 비교하는 것도 불행의 씨앗이다. 타인과 비교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비교하고 싶으면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라. 그러면 그대의 현재의 삶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더구나 쓰라린 고통과 함께 온다.

시간이 흐리지 않는 한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슬픔을 느끼는 동안에는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반드시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고 이를 진심으로 믿는 것이 지금의 당신을 덜 슬프게 할 것이다.

위대한 행복은 우리가 우연히 위치 해 있는 삶의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양심, 건강, 직업, 그리고 정의로운 목적을 추구하는 자유의 결과물이다.

행복의 비결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데 있다. 사색에 잠긴 사람은 행복하다. 한 시간이나 하루 동안이 아닌 일생동안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지 않으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했지요. 첫째, 하는 일이 있는가.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셋째, 희망하는 바가 있는가.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그러나 행복에 관한 멘트를 듣자마자 그 감정을 곧바로 행복으로 급선회했다.

그러다 곧이어 의문이 들었다. 정말 칸트가 저런 말을 했다. 칸트 답지 않은 데 왠지 어설픈 처세술 강사 같은 칸트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시 세상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행복에 대해서라면 칸트보다 평생을 행복에 대해, 연구했다는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셀리그만의 견해가 더 믿음이 간다.

그 역시 행복에 대해 세 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 즐거운 삶. 두 번째,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적극적인 삶. 세 번째, 의미 있는 삶. 그런데 왜 나는 행복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얼마 전 죽은 다정한 친구 생각이 나는 것일까. 지금 그 친구를 혼자 멍하니 생각한다. 그 친구는 지금 구천에서 행복할까. 혹자는 말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다, 라고. 행복도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죽은 자에게 행복을 찾는 것은, 마치 물속의 물고기에게 마실 물을 주려는 것과 같다.

애당초 삶에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생기는 목표는 기왕, 사는 인생 더 잘살아 보려는 욕망의 발현일 뿐이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수단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쾌락이나 충동같은 부류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행복이란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은 마음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 있는 마음이다.

그러니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역시 마음속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크기가 미리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 속에 빠진다’라고, 라로시뿌고는 말했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 생활보다 앞으로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다 바란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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