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평과 영원한 고독을 부르지 마라

서상미(강진동성 향우)

2024-09-30     장강뉴스
서상미

 

변화가 너무 많은 현대를 살다 보면 고달프고 짜증스러워 따뜻하고 기쁜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에는 자꾸만 안으로 기어들어 가는 불평이 많아지고 그런 인간이 일단 무리를 짓게 엉뚱한 행동으로 비약하는 경우가 있다. 불행한 일이다. 웃는 얼굴은 여유에서 생기고 여유는 상대를 살피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인간의 마음이 훨씬 단순했을 때 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도 하극상(下剋上)은 있었고 살육도 있었다. 그리하여 공자는 인(仁)을 가르치고 예(禮)를 강조하여 인간의 질서를 세웠다. 인(仁)이 인간 마음의 협동 화목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예(禮)는 인간에 대한 구속이었다. 인간에게는 자유만이 전부가 아니고 어느 정도의 구속도 필요한 것이다.

인(仁)은 글자의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개인이 아닌 부부, 가정, 이웃, 사회를 이루어 나가려면 서로 화목(기화)해야 한다. 하다못해 특히 도시의 아파트에선 아침저녁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할 정도의 여유가 절실하다. 인(仁)에서 발전하여 맹자(孟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주장하였다. 측은(惻隱)이란 숨겨진 인간본성의 하나로 나 아닌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곧 동정의 마음이다. 이를 쉽게 여유라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천지우주에는 하루라도 온화한 기운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의 마음 역시 하루라도 기쁜 마음이 없어선 안된다.

그리고 도덕은 사람으로서의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행위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도덕은 유교의 사랑이라고 보다는 노장(老莊)의 사상이 짙다. 중국의 고전에는 도(道)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와 노자가 도(道)를 밝히고 있으며 참된 도리(진리)라는데는 해석의 차이가 없다. 다만 노자의 그것은 도가 덕은 곧 인격이고 도를 지키면 저절로 생겨나는 인간의 고상한 품성이다. 이점에서도 노자는 공자와 사상이 같다. 즉 도는 만물의 근원이고 덕은 만물을 낳고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며 끝내는 도로 돌아간다, 고 했다.

그러므로 도덕은 유교적이든 노장의 사상이든 상관없고 오히려 궁극적으로 도를 지키면서 살면 고립되기 쉽지만, 그것은 잠깐의 일이다. 권력에 아부하면 자기 일신도 편하고 권세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우주의 진리는 하나이고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권세를 누리는 자도 언젠가는 권력을 잃게 되고 그 대가는 훨씬 크다. 그리하여 도덕을 지키며 사는 자에게는 한때의 쓸쓸함이 있을 뿐이지만 권세에 빌붙는 자는 영원히 초라하고 구슬프다. 인생에 도통한 사람이라면 당장의 일보다 우주를 추월한 진리를 꿰뚫어 보고 현재보다 미래의 몸을 생각한다. 그러니 한때의 적막을 달게 받을지언정 영원히 후회할 처량함을 택하지 마라.